사진 컨테스트

여강길을 걸으며 찍은 멋진 모습을 올려주세요~ 사진 컨테스트 출품작 중 일부를 선정하여 2021년 연말에 탁상달력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동의하는 분들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또한 매달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드립니다.(비회원 게시물 작성 시 이메일주소, 연락처를 남겨주셔야 기념품 발송이 가능합니다.)

제3코스 강변에 피어 오르는 무놀

임순택(林順澤)
2021-03-17

지난주 토요일(3월 13일) 여강길 제2차 종주 제3코스(바위늪구비길)를 역방향으로 신륵사에서 강천마을 쪽으로 걸었습니다.

신륵사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봉미산(鳳尾山)을 넘어 이웃 양평(楊平)에서 발원한 여주시 오학동 금당천 금당교를 건너기 前 둑길에 아침 무놀(물안개) 피어 오르는 모습이 너무 삽상해서 잠깐 걸음을 멈추고 몇 장의 폰카(갤럭시 A9 휴대폰 Quad 카메라) 사진을 담았기에 게재해 봅니다. 전문가然 폼잡을 수 있는 카메라가 없음이 안타까웠지만.


↑↓ 둑(bank)에서 마악 피어 오르는 무놀(=물안개) 보이시나요? 몽환적인 이 느낌이 너무 좋았답니다, 저는. 

       2021년 3월 13일(토) 오전 8시 44분 촬영


 금당교(金塘橋)

● 금당천(金塘川) : 양평군 지제면(現 지평면) 무왕리 모라치고개에서 시작하여 여주시 북내면(北內面) 주암리, 석우리, 내룡리, 와룡리, 당우리를 지나 신륵사 윗쪽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며 옛날 물이 풍부했을 때에는 하천의 뱃길로 고달사(址)까지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여강길 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금당천과 가정 이곡"을 옮겨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 속 漢字는 제가 넣은 것입니다.

목아(木芽) 불교박물관을 거쳐서 다시 강변길을 걷다보면 금당천을 만나게 되고 천을 건너기 위해 제방으로 올라서면 동쪽으로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마을 이름이 가정리(稼亭里)다. 마을 주민들은 '半여울'이라고도 한다. 高麗 末 덕망있는 문신 중에 '이곡(李穀, 1298-1351)'이란 분이 계셨다. 고려의 충신 三隱 ;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중 木隱 이색의 아버지이다.
귀양살이 하던 가정(稼亭) 이곡(李穀) 선생이 금당천에서 낚시를 드리고 있을 때였다. 조정에서 더 멀리 섬으로 귀양 보래라는 전지를 받은 관원이 여주에 와서 한강을 건너려하였으나 洪水 때문에 감히 건너기는커녕, 구경하기조차 무서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정(稼亭)이 낚시질하는 반쪽은 여울이 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정오가 되어 물이 빠지자 건너편에는 또 한패의 사령들이 들이 닥쳤다. 완전히 물이 빠지고 나니 어제 도착한 사령들은 그대로 있고, 오늘 도착한 사령들은 개울을 건너기 시작하여 수십 명의 교군들이 가마를 메고 와서 정자(亭子) 주인인 이곡(李穀) 선생을 찾았다.
당시 원(元)나라에서는 고려의 처녀를 공출(貢出)하여 받아다 노비로, 기녀로, 후실로 만들고 있었는데 가정(稼亭) 선생은 황제에게 告하여 동녀를 차출해가는 폐단을 없애도록 상소했다. 황제가 상소를 받아들여 공녀의 징발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元나라 관리들이 稼亭을 못 마땅히 여겨 고려에 압력을 넣어 이곳으로 귀양오게 되었던 것이다. 하루 전 장마에 왔던 사령들은 가정을 억류하여 멀리 영해로 귀양지를 옮기게 하라는 命을 받고 왔던 사령들이오, 물이 빠진 후에 도착한 사령들은 귀양지를 옮기지 말고 석방하여 대궐로 모셔오라고 내려온 사령들이었다.
그 후로 반쪽은 물이 깊고 반쪽은 물이 얕았다 하여 반여울(半여울)이란 지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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