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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7 10:38
아나키스트 허균, 손곡 이달에게 길을 묻다 -손곡리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920  

17세기 조선중기에 한 사나이가 선장 없는 배에 올랐다. 그는 행선지를 율도국으로 정하고 스스로 선장이 되어 키를 잡았다. 그러나 그 배는 만경창파를 표류한 끝에 난파되었고 끝내 이상향에 닿지 못했다. 그 선장의 이름은 교산(蛟山) 허균 이었다.

아나키스트(Anarchist), '선장 없는 배의 주인들'이라는 뜻으로 혁명의 나라 러시아에서 그 말(語) 뿌리가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신념은 허균의 생애에서 건져 올린 듯 서로 맞닿아 있다.  ☞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나 인위적인 법, 관습, 권력에 의해 타락한 것이다. 강제적으로 집단을 이루고 법으로 인민을 통제하는 국가는 해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민중심의 혁명을 해야 한다. -아나키즘(Anarchism))

서자, 천재, 이단아, 반역, 홍길동, 율도국... 이모든 키워드를 압축하면 아나키스트 허균이 몽타쥬로 오버랩 된다.  허균(1569-1618), 1569년(선조 2년)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 불꽃처럼 살다가 1618년(광해 10년)에 역모죄로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됐다.

교산 허균은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명문가의 서자 출신으로, 특히 그의 부친 허엽은 서경덕의 문하이며 두 형인 허성과 허봉은 뛰어난 수재로 동인의 우두머리였고, 누이 또한 시재를 떨친 여류시인 허난설헌 이었다. 이렇듯 화려한 계보의막내로 태어난 허균은 그들 중 가장 빼어난 천재였다.
 
손곡 이달에게서 수학하였으며 26세 이후 벼슬길에 들었으나 성리학 이외의 모든 학문이 이단으로 간주되던 시대에, 그는 불교에 심취했고 도교에 빠져드는가 하면 양명학 좌파를 넘나들었고 서학을 수입했다.  서얼과 천민 등 시대가 버린 사람들의 아픔과 재능을 아꼈으며 그들과의 두터운 휴머니즘은 그의 가슴에 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그리고 17세기 이후 조선조 최고의 베스트셀러 홍길동전을 남겼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인이자 개혁사상가인 허균과 여류시인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의 문재와 사상 뒤에는 이달이 있었다. 험하게 얘기하자면 허균의 혁명적 사상과 자유정신은 과외선생 이달이 의식화 했다고도 할 수 있다. 허균은 손곡리에서 자신과 출신이 같은 이달로부터 학문과 비판정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깨우침을 열어갔다. 불온한 스승의 불운한 연대기에서 동병상린의 절치부심 끝에 해탈처럼 혁명의 화두를 얻었다. 이달은 허균의 영특함에 몸서리치며 그의 허기진 지적욕망을 5년 동안이나 담금질 하였다. 방랑벽의 이달이 손곡리에 들어와 한 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것도 바로 이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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