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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7 10:37
지광국사현묘탑비를 통해서본 다반사(恒茶飯事)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428  

「지광국사현묘탑비」가 한국 차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다. 이는 비문에서 제호, 천, 차약 등 차와 관련된 글자가 무려 6군데나 나오기 때문이다. 차와 관련된 금석문으로는 성주사「낭혜화상비」의 ‘명발(茗)’과 쌍계사「진감선사비」의 ‘한명’, 고달원「원종대사혜진탑비」의 ‘방초’ 등이 있다. 당나라 육우는『다경』에서 차(茶)를 5가지로 말했는데 다, 가, 설, 명, 천 등이 그것으로 이중 최고의 차로 손꼽은 천자라는 차자를 법천사지 지광국사의 금석문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차선일미사상은 선종 사상의 백미이다. 선종에서 차 한 잔은 우주요 곧 수행과 상통하는 일맥이었다. 이와 같은 선종 본래의 다반사(恒茶飯事)는 법상종파의 고승들에 의해 수행의 방편으로 전승되었으며, 특히 신라·고려를 거쳐 법상종풍을 일으킨 고승들은 차선일미 사상을 유식학과 접목시켜 고려 때 전성기를 맞게 된다. 선과 법상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이었다.
법상종은 현장법사의 유식론을 계승한 종조로 신라 진평왕과 선덕여왕 시대에 유식론이 우리나라에 전파된 후 원효가 인도하고 태현이 그 뒤를 이어 중흥하였다. 특히 법천사의 지광국사 해린과 그의 제자인 금산사의 혜덕 왕사 등에 의해 이러한 종통이 면면히 계승되었다. 지금도 금산사에 야생차가 자생하고 있는 것이나, 산청의 지곡사지에 928년 법천사 현전 율사에게 나가 구족계를 받고 출가한 진관선사가 당시 심었다고 전하는 야생 차나무가 남아 있다. 여러 문헌자료 등을 통해 법상종의 차풍이 오랜 기간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법상종을 따라 차와 선이 이 땅에 들어왔다. 그리고 차문화의 한복판에 법천사가 있었다. 숭유억불의 암흑기에도 법천사의 다반사는 조선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사로잡았다. 앞서 언급한 태재 유방선을 중심으로 그에게서 배움을 구한 조전 전기의 인물들은 모두 그에게서 차향과 배움을 얻고자 몰려들었다. 그가 강학하던 곳이 법천사 근처여서 지금도 고목나무 옆에 세워진 표지석은 지명을 서원이라 적고 있다.

지광국사현묘탑비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전한다.
身雖不漏命也 云亡  醍輟味歇香
[몸에서 비록 명이 새지 않았지만 이 생명은 머지않아 끝날 것일세.
아름다운 제호도 맛을 잃었고 향기로운 담피향도 향기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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