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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7 10:34
다시 찾은 지광국사현묘탑의 옛 자리, 그러나 기약 없는 이별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830  

강원도 원주 법천사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현재 경복궁 마당에 있는 국보 101호 지광국사현묘탑이 건립당시 세워졌던 자리가 확인됐다. 또 지광국사현묘탑의 상층기단 모서리 조각도 발견하여 결실상태였던 탑의 원형 복원이 가능해졌다.
 
독특한 형태의 정교한 조각으로 고려시대 부도를 대표하는 지광국사현묘탑은 1912년 일본으로 반출됐다가 1915년 가까스로 돌아온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3월부터 원주시 부론면 법천2리 법천사터에서 벌인 제2차 발굴조사를 31일 마무리했다. 2001∼2002년 사역 전체를 시굴조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중심 사역의 동쪽 900여평을 발굴했다. 그 결과 1938년 일본인이 만든 실측도만 남아있을 뿐 그동안 정확하게 알 수 없었던 지광국사현묘탑의 위치를 확인했다.
 
높이 4.55m에 이르는 탑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하여 돌을 다져넣은 기초(적심)는 가로·세로 각 3.5m 정도이다. 이곳에서 탑의 상층기단 모서리 조각과 함께 석등의 화사석(불을 켜는 자리) 조각과 석등의 기둥 돌로 보이는 사자상 조각도 수습됐다. 화사석은 8각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측면에는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조사단은 이 사자상 석등이 국보 제5호 법주사 쌍사자 석등과 비교 검토가 필요한미술사 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은 1067년 고려 국사의 신분으로 법천사로 은퇴한 뒤 1070년 입적했다. 법천사는 조선 초기까지는 법맥이 이어 졌으나, 허균이 1609년 “폐허가 된 법천사를 답사했다.”는 기록을 남기는 등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강원도와 원주시는 이달부터 법천사터에 대한 3차 발굴에 들어가 2006년까지 사역을 모두 발굴한 뒤 유적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서동철기자  [대한매일] 2003.09.01

천년가까이 해로하던 탑과 탑비가 왜인의 손에 결박되어 생이별한지 10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 한편의 기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비록 현묘탑은 돌아왔지만 그를 기리던 탑비와 각각 경복궁과 법천사지에 아직도 쓸쓸히 헤어져있다.  1915년 고국에 돌아 왔지만 상봉치 못하다가, 1957년 6.25전쟁의 와중에서 유탄에 맞아 처절하게 나뒹굴던 부도탑은 고건축과 문화재 복원의 대가 임천(林泉, 1908~1965) 선생에 의해 가까스로 제 모습을 추스렸으나, 만신창이가 된 현묘탑은 중앙박물관 이사길에도 따라 나서지 못하고 여전히 경복궁 뜰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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