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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7 10:28
세종대왕릉과 팔대장림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581  

팔대장림은 여주와 경기도의 대표적인 강변 숲이자 생태문화자원으로 영릉, 양섬, 청심루와 시인묵객, 신륵사 등과 함께 여주의 문화유산을 상징한다. 이러한 지역의 생태문화자원을 발굴생성하고 보전하는 것은 인간의 중요한 역사 활동이자 지속 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 활동이다.     
   
    생태문화 또는 문화생태와 강변 숲
생태 또는 문화라는 단어는 이분법적인 의미를 가지며 일반적으로 생태학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은 상반되는 개념으로 규정되면서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생태학(ecology)의 구도 속에서 인간의 문제 즉 생물학 적 인 인간뿐만 아니라 정신현상의 원천이 되고 있는 인간의 측면에 대해서 좀더 중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하게 되면, 우리는 일반생태학이 수용 하지 못하는 문화의 영역과 마주치게 된다.

예를 들어 동일한 초원생태계 내에서 야생의 들소를 사냥하며 살아가는 인간 집단과 이들 들소를 가축화하여 살아가는 인간집단은 모두가 같은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들소’와 ‘가축’ 사이의 차이는 문화의 형성문제가 나타나게 되는 인간의 사회적 현상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팔대장림은 자연과 사회적 필요에 대한 인간의 적응  전략에 의해서 형성된 문화의 표현, 즉 자연을 전유(專有)하는 인간의 능력이 환경과 인간의 관계구도에 내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여강(驪江) 팔대장림(八大長林)의 생성과 소멸
경기도 여주군을 관통해 흐르는 남한강을 여강이라고 부르며 현재는 여주읍으로 편입된 오학리와 현암리 일대의 강변에 팔대장림 또는 패다수로 불리는 강변 숲이 있었다.

팔대장림의 기원은 정확하게 고증할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조에 들어 세종대왕능이 여주로 천장을 하게 되면서 세종대왕의 적손인 8대군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팔대장림이라 불려지기 시작했다.

팔대장림의 규모는 고지도상 길이가 10리(4km)에 폭이 1리(400m)로 약 50만평으로 추정되며, 영조43년(1767)에 여주목사 이성규에 의해 구결 팔십삼부 육속(약 50,000여평)이 농경지로 개간되어 황폐화 되었고 이일로 여주목 사는 파직까지 당하게 된다.
 
이후 철종 5년(1854)에 완전히 개간되어 팔대장림의 모습은 사라지게 되며 이때 개간된 농지는 신륵사에 복속되었으나 현재는 대부분 하천부지와 사유지로 남아있다. 
  
    팔대장림(八大長林)의 역사와 문화
팔대장림은 여주팔경 중 제6경으로 꼽히며 청심루(淸心樓)와 함께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였으며,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유람을 하며 글을 남겼는데 한때 목은 이색(1328~1396), 포은 정몽주(1337~1392)를 비롯한 약 40여명의 시판(詩板)이 청심루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팔대장림과 관련한 역사적 기록으로는 세종대왕이 팔대 숲에서 점심을 드셨다(세종 3년)는 내용과, 특히 정조대왕이 청심루에 나아가 관찰사 정창성(鄭昌聖)에게 명하여 수군사열을 행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그밖에 영조, 숙종, 성종 등이 여주를 찾아 참배한 기록을 볼 때 팔대장림과 청심루를 찾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원호장군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강원도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패잔병과 의병을 모아 여주 신륵사 부근과 팔대장림에서 매복하여 게릴라전으로 왜군을 크게 격퇴하였다는 기록으로, 군사목적의 강변숲의 예를 반증하는 대목으로 사료된다.

이렇듯 팔대장림은 여주 남한강의 주요 강변 숲으로 제방을 보호하고 군사적으로 또는 산야초 등의 생산지로도 활용되었으며, 특히 영릉이 천장된 이후로는 능침과 8대군의 번영을 위한 비보림(裨補林)으로써, 그리고 강변에 연접한 읍지역의 경관 숲 등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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