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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7 10:28
천년고찰 신륵사와 조포나루
 글쓴이 : 운영자
조회 : 2,449  

신륵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579~631 재위) 때 원효(元曉)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으며, 신륵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권7 여주목 불우조(驪州牧佛宇條)에 의하면 신륵사는 보은사(報恩寺) 또는 벽사(璧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벽사는 고려시대에 경내의 동쪽 언덕에 벽돌로 된 다층전탑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이 대찰(大刹)이 된 것은 나옹화상(懶翁和尙:혜근)이 입적할 때 기이한 일이 일어난 뒤부터이다.

1379년(우왕 5) 각신(覺信)·각주(覺珠) 등이 절의 북쪽에 사리를 봉안한 부도와 나옹의 초상화를 모신 선각진당(先覺眞堂)을 세우면서 많은 전각을 신축하고 중수했다. 1382년에는 2층의 대장각(大藏閣) 안에 이색과 나옹의 제자들이 발원해 만든 대장경을 봉안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영릉(英陵)의 원찰(願刹)이 되었고, 1472년(성종 3) 절이 확장되고 다음해에 정희왕후가 보은사로 개칭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1671년(현종 12)에는 계헌(戒軒)이, 1702년(숙종 28)에는 위학(偉學)·천심(天心) 등이 중수했으며, 1858년(철종 9)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내탕전(內帑錢)을 희사해 중수했다.

현존 당우로는 금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조사당(祖師堂:보물 제180호)·명부전·심검당·적묵당·노전(爐殿)·칠성각·종각·구룡루(九龍樓)·시왕전 등이 있다. 또한 다층석탑(보물 제225호)·다층전탑(보물 제226호)·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보물 제228호)·보제존자석종비(보물 제229호)·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보물 제230호)·석등(보물 제231호) 등과 같은 문화재들이 있다.

신륵사는 강가에 가람을 배치한 유일한 절이며 구룡루 앞 강변을 통해서 배로 진입할 수 있었던 독특한 구조로, 지금은 일주문이 새로 나있어 관광지를 통해서 육로로 들어 올수 있게 되었으나, 처음엔 배로 진입해야 절집의 대문인 사천왕상이 있는 구룡루를 통과할 수 있었다. 신륵사 앞 강변에는 조선시대 4대 나루의 하나인 조포나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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