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스 옛나루터길 (코스길이 18.5km)

1코스 옛나루터길 (코스길이 18.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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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나루터길 이야기

옛 여강에는 총 18개의 나루터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나루터를 통해 장을 보고 소와

땔감을 실어 날랐다. 강길을 걷다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이 옛나루터의

흔적이다. 여주역에서 시작하여 도리마을까지 걷는 1코스 ‘옛나루터길’에는 현재

부라우, 우만리, 흔암리 나루터 세 곳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주역에서 출발해 여주터미널을 지나 ‘달을 맞는 누각’이라는 영월루를 시작으로

여강(남한강)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제방을 쌓기 전 모래에서 은빛이 난다고 해서

금은모래라고 부르는 강변유원지를 지난다. 지금은 캠핑장소로 연중 사람들이 찾고

있다. 남한강이 연양천과 만나는 합수지점에서 복원된 황포돛배를 탈 수 있다.

수운이 발달했던 시대의 정류장인 나루터를 지나는데 이호, 부라우, 우만리나루터를 만난다.

아홉사리 과거길은 걷다보면 층층둥글레 서식지나 토종 야생수국을 볼 수 있고 6월경 곳곳의 뽕나무에는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 걷는 이들을 반긴다. 지나다보면 외래 식물인 가시박이 곳곳에 자라고 있어 식물군들의 군집 경쟁을 볼 수 있다.


재미 보태기

영월루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7호)

조선시대 여주 관아의 정문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1925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명칭도 기좌제일루(기좌제일루)에서 영월루(영월루)로 변경했다고 한다. 영월루는 달을 맞는 정자라는 뜻으로 남한강과 여주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된다.

마암 (馬巖)

영월루 바로 아래의 절벽 바위를 ‘마암’ 이라고 한다. 여주를 대표하는 관성(貫姓) 중의 하나인 여흥 민씨는 마암 바위의 구멍에서 시조가 탄생했다 하여 이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다. 또 신라 경덕왕 때 마암 바위 아래의 푸른 물결에서 황룡 마와 여룡마(검은 용마)가 출현하여 고을 이름을 황려현(黃驪縣)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암은 여주를 대표할 만한 유적이다.


부라우나루터 

여주시 단현동과 남한강 건너편의 강천면 가야리 지역을 연결하던 나루이다. 나루 주변의 바위들이 붉은 색을 띠어 붉은바우 - 붉바우 - 부라우라는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주로 강천면 주민들이 여주장을 이용하기 위해 나루를 이용했지만 가끔 소금배가 정박하기도 했다. 고갯 마루에는 당시 세도가인 민참판댁 외가가 있었다고 한다. 명성황후 생가가 있는 능현동는 여흥 민씨의 집성촌이었다. 1975년 폐쇄되었지만 풍경이 뛰어나다. 부라우나루 너럭 바위엔 단암(丹巖)이라는 새겨져 있다. 인현황후의 친오빠인 민진원의 호가 단암이다. 부라우 앞에 있는 강을 단강이라고 불렀다.

우만리나루터

여주시 우만리나루에서 떠난 배는 남한강 건너편 강천면 가야리에 도착한다. 나루터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현재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우만리나루터는 땔감을 구하러 강천으로 가는 주민들이 주로 이용했다. 원주에서 온 소장수들이 우만리나루를 경유하여 여주장과 장호원장으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1972년 홍수로 없어지기 전까지 음력 정월 보름 이면 우물 3곳에서 남한강물을 떠다가 지은 밥을 날이 밝기 전에 강으로 흘려보냈다. 용왕신을 배불리 먹여 사고를 막고자 하는 액땜이었다.


흔암리 선사주거지

흔암리 선사주거지는 청동기시대의 유적 이다. 이 시대는 석기시대와는 다르게 농경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낮은 구릉 지대를 중심으로 밭농사가 이루어져 사냥 이나 채집에 의해 식량을 의존하지 않고 경작과 불을 이용한 방식이 도입되어 농업 시대를 열게 된다. 흔암리 유적지는 화덕 자리와 토기 안에 탄화된 쌀을 비롯하여 조, 수수,보리, 콩 등이 출토되었는데 여러 잡곡이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흔암리 나루터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와 건너편 강천면 굴암리를 연결하던 나루이다. 마을에 위치한 바위가 희기 때문에 흔바위라고 하며 나루터명도 마을명칭에서 유래되었다. 흔암리와 굴암리 주민 들은 대규모로 땅콩 농사를 지었으며 남한강 중앙에 위치한 하중도 경작을 위한 농선으로도 이용되었다. 1972년 홍수로 인해 마을이 5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면서 흔암 나루도 기능을 상실하였다. 나룻배가 없어지기 전까지 여름철이면 흔암나루에서 원주에 있는 개치나루까지 나룻배를 끌고 가서 배를 타고 내려오는 뱃놀이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아홉사리과거길

흔암리와 도리를 연결하는 오솔길로 좁고 험해 아홉 구비를 돌아간다고 해서 아홉사리이다. 경상도 충청도에서 과거(科擧)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지만 사용하지 않아 자연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 39종의 식물의 서식이 확인되었다. 경상도 지역의 과객들이 문경( 聞慶)을 거쳐 서울로 갔는데 이유는 ‘좋은 소식을 듣는다.’는 뜻 때문이었다. 죽령은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비들은 문경을 선호했다고 한다. 아홉사리 고개에는 매년 9월 9일 아홉 번째 고개에 피는 구절초를 꺾어 달여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서려있다. 아홉사리 고개를 넘다 넘어지면 아홉 번을 굴러야만 살아서 넘을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전한다. 과객들도 사라지고 주막도 없어진지 오래지만, 배 삯을 아끼려는 사람들이 걸어서 한양으로 오가던 길, 한도 많고 사연도 많은 이 길을 400여년전에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록에 남아있다.

층층둥굴레

층층둥굴레는 아홉사리과거길 전체에 분포하고 있으며, 국내 최대의 군락지로 알려져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높이는 30~90cm이며, 뿌리줄기는 옆으로 뻗어 번식하고 잎은 피침 모양이다. 6~7월에 연한 노란색 꽃이 짧은 꽃대에 두 개씩 아래를 향하여 달리고 열매는 장과(漿果)로 9월에 검게 익는다. 어린잎과 뿌리는 식용하고 충북 이북에 분포한다.


도리마을

점동면 장안리 마을 서편에는 도호동(桃湖洞)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수운이 발달하면서 강변쪽이 생활이 편리하고 토양이 비옥하므로 도호동 사람들이 이동하여 큰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해서 도래(桃來)가 되고 되래로 발음하였으며 도리라는 행정지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도리 늘향골 마을은 녹색농촌체험마을로 감자캐기, 고구마캐기, 두부만들기 등의 농촌체험을 즐길 수 있는 마을이다. 새말과 사장골 부락이 있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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